`선무당의 굿` 대학평가

음악·패션 전공학과 취업률 압박 여전하고 논문은 질보다 양으로 평가하는 풍토 만연 해동청·한혈구 키우려면 인재 평가기준부터 고쳐야동대문시장에 가면 여러 번 세일을 거친, 더 이상 매장에 내놓을 수 없는 옷들은 무게로 달아서 처분한다. 가게 주인은 이미 여러 번 세일을 거치고 남은 옷인지라, 옷 품질에 관심이 없다. 산더미 같이 쌓인 티셔츠, 바지, 스커트들을 품질별로 분류하는 것은 인건비도 남지 않는 작업이다. 손님들은 옷을 한 벌 한 벌 살펴 볼 여유가 없다. 무게를 더 달라는 것이 유일한 흥정. 옷감이나 디자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난센스다. 옷값을 무게로 일괄 결정하는 막장 땡처리다.

대학가에 구조조정 바람이 뜨겁다. 재정이 열악한 국내 사학들에 정부 지원금은 생명수이며 정부의 대학 평가기준은 지고지순한 절대선이다. 정부는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률 등을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해왔다. 대학의 자정 메커니즘을 가동하고, 경쟁력에 상응하는 지원을 한다는 근본 취지는 옳다. 하지만 학문적 다양성과 분야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일괄적인 평가는 선무당의 굿이다.

졸업생들이 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몇몇 학과들(예컨대 실용음악과 패션디자인학과) 취업률을 건강보험 가입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 그 예다. 졸업생들이 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가입률이 낮고, 이들 학과 취업률은 항상 하위권이다.

싸이 강남스타일이 세계 무대를 휩쓸고, 동대문 의류타운이 아시아 패션 메카로 자리 잡은 오늘날, 정작 관련 학과들은 정부의 평가기준으로는 흉물스러운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했다.

김상태 퍼듀대학 화공과 석좌교수는 2013년 호암상 공학 분야 수상자다. 그는 이미 30대에 위스콘신대학 화공과 학과장을 역임했고, 43세에 미국 공학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미국에서 수상한 학술상만도 10개가 넘는다. 김 교수가 개발한 기술은 RFID(교통카드에 사용되는 칩) 제조단가를 혁신적으로 낮췄다. 김 교수가 평생 저술한 논문은 약 70편이다. 국내 대학은 교수 연구실적을 저술한 `논문 개수`로 평가한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학자인 김 교수 연구업적은 `개수`만을 세는 국내 대학 기준으로는 그저 아주 평범할 뿐이다.

전 세계가 소프트웨어 기술 확보에 혈안이다. 삼성전자는 5년간 1700억원을 투입해 소프트웨어 인력 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기술경쟁력 제고의 정점에 소프트웨어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들은 학술지 일변도인 평가 기준 때문에 활동이 심각히 왜곡되고 위축되어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전혀 무관한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각종 정부 평가기준 때문에 국내에서 개발된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의 외국 진출, 세계 정상급 학자ㆍ연구원의 국내 영입, 국내 인력의 외국 진출, 국제 공동 연구개발 등 활동들이 총체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취업률, 논문 수, 소프트웨어에 대한 왜곡된 평가기준은 현상은 다르나 근본 원인은 하나다. 분야의 다양성과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오직 숫자만으로 일괄적인 평가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게로 달아 옷을 떠넘기는 동대문시장 땡처리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토정 이지함은 만언서에서 “해동청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긴다면 늙은 닭만 못하고, 한혈구에게 쥐잡는 일을 시킨다면 늙은 고양이만 못하다(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며 기재(奇才)를 반영한 인재 중용의 중요성을 임금께 간언하였다. 해동청(海東靑)은 사냥매 중에 최고인 매, 한혈구(汗血駒)는 천리를 한걸음에 달리는 준마다. 해동청과 한혈구가 각각 기예를 한껏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제대로 된 평가체제 구축이 절실하다.

[원유집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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