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한국’이 더 나아가려면
요즘 여러 분야에서 좋은 소식들이 많다. 반도체, 통신 등 디지털 IT를 필두로 한 우리나라 기술 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반도체, 통신, 자동차 등은 올림픽 종목으로 치자면 양궁이다. 워낙 잘해왔다. 여기에 최근 몇 종목이 더 가세했다. 미국 시장에서 국산 TV가 23분기 연속 1위다. 국산 냉장고와 세탁기가 미국 가전 평가에서 4년간 계속 1위다. TV, 가전 등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와 같은 고급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결과다.가장 최근에는 국산 스마트폰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애플과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사회의 디지털적 구성 요소라 한다면 문화, 예술, 체육 등은 사회의 아날로그적 구성 토대다. 더욱 흥이 나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디지털 기술 선진국을 넘어 아날로그 부문에서도 일류라는 것이다. 스포츠를 보자. 선진국 종목인 수영, 골프, 스케이팅 등에서 우리 선수들이 세계 강호들과 당당하게 자웅을 겨루고 있다. 며칠 전 시작된 런던올림픽은 우리의 국격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사격, 양궁, 그리고 무엇보다 값진 마린보이 박태환의 은메달까지 말이다.
우리나라 문화를 보자. 대장금, 욘사마에서 소녀시대까지 한류 바람이 아시아를 넘어 남미, 유럽, 미국까지 세계로 거침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문화는 경제력, 군사력만큼 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경제, 군사 면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국이 아직 건재한 이유도 셰익스피어, 비틀스, 퀸, 해리포터로 점철되는 영국 문화가 여전히 세계인의 감성 영역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3.0 시대의 화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음매 없는 융합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기술은 인간의 삶에 공헌하도록 존재하고 작동해야 한다는 `기술의 인간화`다. 이제 대한민국은 디지털뿐 아니라 문화, 체육 등 아날로그 영역까지, 누가 뭐래도 미래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일류 국가 면모를 충분히 갖추었다. 이 시점에서 진정한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 우리가 돌아보고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초고속 발전의 이면에 주목받지 못한 평범한 다수, 그 대열에서마저 소외된 소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1년에 수 차례씩 업그레이드되는 초고속 스마트폰 사회 속에서 경쟁자보다 더욱 빨리 달리려니 경쟁에 참여하는 선수나 관람객이나 피곤하고 지치기는 매한가지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살률, 이혼율, 출산저하율 등 구성원의 행복지수라 할 수 있는 지표들은 그리 고무적이지 않다. 보통 사회구성원들에게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삶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이다. 국내 디지털 기술의 세계 제패, 올림픽 금메달, 한류 돌풍, 여기저기서 화려한 팡파르가 울린다. 다수 사회구성원이 삶에 대한 진정성과 비전을 잃은 채 소수의 승자들을 위한 팡파르만 계속 울린다면 그것은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100명 중 1등`을 배출하려면 1등 한 명과 1등 아닌 99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계 1등을 충분히 많이 배출했다.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1등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1등이 아닌 나머지 99명에 대한 인정과 격려, 새로운 비전의 제시, 무엇보다 최하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보호다. 팀 대한민국은 이제 쫓는 도전자에서 타이틀을 방어해야 하는 우승자로 그 위치가 전환되는 시점에 있다. 다른 팀을 따라잡을 때는 우리팀 에이스만 우선 빠르면 된다. 타이틀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우리 팀의 가장 느린 선수도 상대팀의 웬만한 선수들보다는 빨라야 한다. 기술의 인간화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초일류 국가로의 도약을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최소한의 이유다. [원유집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