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T 자만과 방심은 금물
스마트폰, TV 등을 전면에 세우고 거침없이 진군하는 우리나라 IT기업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스마트폰 미국시장 점유율에서 삼성, LG가 각각 1위, 3위이고 이 둘을 합치면 미국시장의 44%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시장이 곧 세계시장을 집약한 바로미터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점유율이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삼성과 애플의 끝없는 경쟁은 보는 이에게 현기증까지 들게 한다. 반도체, TV의 세계시장 석권 소식은 너무 귀에 익어선지 이제는 감흥조차 없다.국내 대기업들의 세계시장 선전과 더불어 2012년 IT 분야의 큰 줄거리는 초우량 IT기업들의 쇄락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의 전자산업 삼총사인 샤프, 소니, 파나소닉은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종신고용 원칙을 어긴 적 없는 100년 전통의 샤프는 지난가을 1만명(전체 종업원의 20%) 감원계획을 발표했다. 파나소닉은 올해도 약 10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측된다. 휴대전화 부문 세계시장 점유율 1위 노키아는 5년 전인 2008년에 비해 주가가 10분의 1로 떨어졌고, 오바마 폰으로 유명한 블랙베리는 신모델이 `도착 즉시 사망(death on arrival)`이란 굴욕적 평가를 받으며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IT 분야 초일류기업들의 추락을 목격하며 당당하게 거머쥔 세계시장 석권이니 더욱 값지고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IT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1위 석권에 대한 겸손한 자부심과 긍지 외에 거품 낀 자만과 방심이란 정서가 느껴져 무척 염려스럽다. 많은 모임에서 우리나라 스마트폰이 세계를 제패할 수밖에 없는 자찬, 초일류기업들의 패퇴에 대한 비장필천식 대화가 예외없이 등장한다. 대화 내용의 논리적 타당성과는 별개로 대화 분위기에서 설익은 자존심과 어설픈 교만이 자주 보인다.
유례없는 감원과 장기간 불황에도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 경제대국이다. 도쿄도 1년 예산이 180조원으로 서울시의 약 9배, 일본의 소프트웨어 내수시장은 우리나라의 10배다.
노키아 이후(post-Nokia)의 핀란드는 여전히 국민소득 3만8000달러인 부자나라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입지를 잃었지만, 여전히 노키아의 지도 서비스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약 50%에 탑재되고 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 정도로 스페인과 뉴질랜드 수준이며, 우리와 거의 모든 부문에서 경쟁하고 있는 대만의 3만7000달러에는 한참 못 미친다. 대만을 제치고, 일본을 뒤로 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일천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변곡점에 있다. 멀리는 핵심 원천 기술을 보유한 서방 선진국들과, 가까이엔 13억 인구를 무기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해야만 변곡점의 우상향 방향으로 올라설 수 있다. 노키아의 부진, 블랙베리의 추락, 소니ㆍ샤프ㆍ파나소닉 등의 고전, 그리고 삼성과 LG의 약진은 모두 소프트웨어 기술로 대변되는 21세기의 디지털 생태계에 얼마나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적응했느냐에 기인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성취해낸 국내 기업의 선전에 찬사를 표한다. 그러나 승자의 여유로움을 즐기기에는 갈 길이 멀었으며 이뤄 놓은 것 또한 많이 부족하다.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이 방심과 자만에 노출되는 순간 추락이 시작된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추락 역시 광속(光速)이다.
국내 IT 분야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최고 기술력을 지닌 조직의 일원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기 바란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지 않은가.
[원유집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