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함정, 본질에 약한 사회
가수 싸이가 신곡 `젠틀맨`을 발표했다. 반복되는 강한 비트, 재미있는 댄스, 독특한 뮤직비디오 영상. 중년인 필자에게도 진한 여운이 한참 남는 곡이다.젠틀맨에 대한 뉴스들을 차분히 읽어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사들이 곡의 분위기나 가사, 멜로디, 비트 등 곡의 본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관심은 젠틀맨의 `숫자`에 있다. 노래 자체보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2억번 조회`, 미국 빌보드 차트 `5위`, 영국 차트 `2위` 등에 우리 사회는 더 열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기술은 세계 최고다. 삼성전자에서 지난 4월 중순 갤럭시S4를 출시했다. 외국 언론들은 갤럭시S4의 다양한 부분, 플라스틱 케이스의 특성부터 배터리, 성능, 소프트웨어 기능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비해 국내발 갤럭시S4 기사들은 대부분 몇 대를 팔 수 있을지, 매출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 등의 정량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다룰 뿐 스마트폰 기술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모든 것을 숫자로 평가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의식구조를 보면 우리의 사고 기저에 분석과 정량화에 근거한 논리체계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체계와 의사소통 방식은 분석, 정량화와는 거리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미국에서 길을 물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알려준다. “2마일 직진해서 세 번째 신호등 남쪽 방향으로 좌회전하세요. 좌회전 후에 오른쪽에서 세 번째 푸른 지붕 집입니다.” 평소에 어떻게 저렇게 거리, 신호등 개수까지 정확히 알고 있을까 내심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길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이리로 쭉~ 가시다가, 좀 가셔서 우측으로 다시 쭉~ 가시면 대충 그 근방에….”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정확히 기억하지 않으면 묻지 않은 것만 못하다.
요리책을 보자. 서양 요리책은 화학실험 지침서 수준이다. “설탕을 10g 넣고…, 5분간 반죽 후 섭씨 250도 오븐에서 30분간 조리.” 모든 설명이 명확하고 자세하다. 우리나라 음식의 요리책은 “설탕과 소금을 약간 넣고, 중간불에 알맞게 끓여서 적절히 식힌 후….” 이런 식이다. 옆에서 직접 보고 배우지 않는 한 제대로 맛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논리보다는 직관에, 구체보다는 추상에, 정량보다는 정성적인 부분에 더 익숙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량화는 본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논리적인 해석없이, 본질과 무관하게 비교하기 쉬운 숫자를 임의로 정한 일종의 비약이다. 삼성의 스마트폰은 성능, 배터리 수명 등 모든 정량화 항목에서 아이폰보다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하지만, 구입하겠습니까?(Despite all these, would you buy one?)”라는 평을 받아왔다. 디자인이나 소프트웨어 등 정성적인 부분에서 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기술 발전 과정은 휴식 없는 추격이었다. 기술 로드맵과 그에 기반을 둔 단계별 정량지표가 그 과정을 드라이브해 왔다. 스마트폰에서, 가전에서, 반도체에서, 조선에서, 철강에서 전 국민이 반 세기 이상 노력한 결과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차상위로의 진입을 위해 정량보다 정성적인 측면을 추구해야 할 때다.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 건수로 곡을 평가하기보다 곡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스스로의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스마트폰의 매출과 판매량보다는 기기의 본질을 평가할 수 있는 소양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펙보다는 내용을, 외형보다는 본질을 추구해야 할 때다. 명품 핸드백들을 항목별 점수로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원유집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