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원유집 교수

역사가 200년 남짓 한 미국은 엘비스가 입었던 청바지를 액자에 넣어 국보급으로 애지중지 하고, 링컨 대통령이 사용하던 침대에서 하룻저녁 지내는 비용으로 몇 만불을 받는다. 이들의 역사에 대한 애착은 자격지심으로까지 느껴지게 한다.이에 반해, 백여년이 넘은 가옥을 쉽게 헐어 새로운 집을 짓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물려주신 바래디 바랜 금가락지가 대접 못 받고 깊숙한 장농 한구석의 그늘에 묻혀버린 것이 우리네 사회 문화가 아닌가 한다.

해방,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개방과 발전 드라이브, 그리고 사회 구조의 혁명적인 재편성으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소중함은 저 뒤안길에 묻혀져 버린 것 같다. IMF 환란때의 금 모으기 운동에서 재미있는, 어쩌면 어처구니 없는 장면을 몇 개 보았다. 몇 대째 내려오는 금비녀, 노리개 등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겠지만, 암튼 몇 대를 두고 내려온, 그것에 담겨진 사람들의 역사며, 가치를 금붙이로 보는 것은 어쩌면 좀 비약이 섞였을 지는 모르겠으나 좀 심각한 역사 불감증이 아닌가 싶다. 현찰화 될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황금만능주의는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발현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놀던 다 떨어진 야구 글러브하고 거덜단 야구공을 성탄절 선물로 줄 부모가 과연 있을까? 거기에 얽혀있는 아빠 인생의 일부분을 때묻지 않은 가슴으로 받을 수 있는 꼬마가 있을까? 가슴으로 받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아빠가 한 세대 이전에 그 선물을 받았을 때의 그 기분으로 그 선물을 받는 것 말이다.

요즈음 “부자되세요.”, “돈 벼락”등의 단어가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력이라는 것은 분명히 매우 강력한 힘이다. 그러나, 작금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기본적인 규율과 도덕등을 모두 무시한채, 모두 “金”을 향해서 너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보다 많이 일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시스템은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좀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벌고자 하는 사고, 반칙을 해서라도 앞서 나가고자 하는 사고가 점점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요즈음은 “노동의 신성함” 혹은 땀의 가치등을 이야기 하면 왠지 고리타분해지는 것 같다. 성실과 근면을 학생들에게 이야기 하자니 왠지 머쓱해진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보다 더 물질 만능주의인 것 같다. 배우자 선택시에도 이러한 현상은 뚜렷하게 들어난다. 남성들은 외모를 배우자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성들은 남자들의 경제적 능력을 제일 중요한 선택기준으로 삼는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어쩌면 같은 사회현상의 다른 형태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가장 기저에 있는 것은 사회를 이끄는 “건강한 생각”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것, 바르게 성실하게 사는 것에 대한 중요성등이 그것이다. 선과 악에 대한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식적인 정의가 든든히 한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는 선진문물의 무분별한 습득과 철학/문화 자긍심의 부재가 묘하게 결합되어 아무생각 없는 극단적인 형태의 배금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위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사회는 지난 50년간 발전이라는 깃발아래 매우 빠른 속도로 전진을 해왔고, IMF 외환위기를 맞아서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희생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바르게 사는 것, 옳고 그른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너무도 간단한 논제에 대한 논의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것이 최근 들어 나타난 각종 비도덕적, 비윤리적 사건들로 구체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첨단 기술 개발, 수출 장려를 통한 경제 발전, 소득 2만불 국가 진입등 모두 좋은 이야기이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번 쯤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을 면면히 버티고 있는 “건강한 생각”의 존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정립을 해야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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