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영혼이라 불리는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을 떠난다. 지난 6월 말 실리콘 밸리에서 전해온 소식이다. 아이폰, 아이팟, 아이맥, 그리고 최근 건립된 ‘애플 파크’를 의미하는 무한루프(Infinite Loop)라는 별칭의 애플 사옥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아이브는 30년 가깝게 애플 제품의 디자인을 책임졌다. 그런 그가 회사를 떠난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아쉬워한다. 뉴욕포스트는 “그의 이직으로 사과(apple)가 썩었다(rotten)”고 했다.
애플 제품은 뻔뻔할 정도로 단순하고 얄미울 정도로 깔끔하다. 애플의 룩앤필(Look & Feel·모양과 느낌)은 포장, 제품, 화면 메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초지일관 유지된다. 애플의 어벤져스급 디자인팀이 도도한 일관성의 원천이다. 손목시계형 웨어러블 기기인 애플워치를 디자인한 마크 뉴슨, 영국 버버리사의 디자인 총책 앤절라 애런츠 등이 일원이다. 아이브는 “뉴슨이 있으니 애플을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다”고 했다. 몽블랑 만년필, 루이뷔통 가방, 테팔 주방기구 등 뉴슨의 작품 리스트는 끝이 없다. 아이브가 애플을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디자인 강국 영국의 저력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영국은 명실상부 디자인 최강국이다. 런던은 디자인 성지다. 애플 디자인 팀뿐만이 아니다.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로 존 갈리아노(루이뷔통), 제임스 다이슨(다이슨청소기) 등이 있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도 런던에 디자인 연구소를 두고 있다. 영국산 디자인의 경쟁력 이면에는 2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국가 차원의 디자인 교육이 있다. 영국은 산업혁명 직후인 1837년 디자인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한다. 이것이 전 세계 모든 디자이너의 로망인 영국왕립예술학교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국력이 쇠락한다. 급기야 1976년에 노동당이 이끄는 영국은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다.
당시 영국은 이미 제조업에서 모멘텀을 잃은 상태였다. 대처 정부는 과감히 디자인산업 육성에 집중한다. 디자인산업을 발판으로 영국은 다시금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약 20년 후 1996년 영국 정부는 디자인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판을 새로 짰다. 디자인과 기술 과목을 정규과정으로 편성하고 디자인 교육을 의무화했다. 미국 등 대부분 국가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matics) 과목을 강조하는 반면, 영국은 여기에 Art 과목을 추가하고, STEAM 교육을 강조했다.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영국정부의 인식을 시사한다. 영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디자인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갖고 교문을 나선다. STEAM 교육시스템이 배출한 영국인들이 21세기 산업제품의 디자인을 주도하고 있다.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초중고생 사이에 코딩 교육 열풍이 일고 있다. 올해부터 코딩 과목이 초중고교의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 6학년은 연간 17시간, 즉, 한 달에 한 시간 정도 수업을 듣는다. 중학교는 재학 중 총 34시간, 중 1때 주당 한 시간에 코딩 수업을 듣는 셈이다. 코딩을 제대로 익히기에는 수업시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모자란 부분을 독학이나 사교육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다. 코딩이 사교육으로 점철된 평가형 과목이 된다면 문제풀이에만 능한 ‘입(mouth)’개발자와 코딩이 두려운 ‘코포자’들의 양산에 그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코딩교육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끝장이다.
성공적인 코딩 교육을 위해, 영국의 디자인 교육 시스템을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 교육과 코딩 교육은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 두 경우 모두 결과물의 창의성과 실용성이 핵심이다. 문제 정의와 해결능력을 동시에 함양해야 한다. 영국의 디자인 교육 시스템은 200여년간 다듬어지면서 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달성했다. 영국은 디자인 교육으로 경제대국의 위치를 탈환했다. 21세기 4차산업혁명의 동력은 코딩이다. 한반도 코딩 교육에 불이 붙었다. 코딩강국 대한민국이 가까운 미래에 4차혁명을 주도하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원유집 카이스트 교수 컴퓨터공학